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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 차곡차곡

119 구급차를 타다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삼겹살을 구웠죠. 맥주 2컵에 소주도 서너 잔 마셨습니다. 즐거운 만찬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배가 살살 아파 뒤척였는데, 아내가 안 보이더라고요.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에서 자는 아이들을 보며 아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일찍 들어와 자라는 말을 남기고 들어왔습니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자리에 누웠더니, 명치 끝이 살살 아프더군요. 편안한 자세를 잡기 위해 옆으로도 누워봤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바늘 끝으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파 팔다리를 모으고 엎드렸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내를 불렀습니다.

    

"나 이상해. 이렇게 아픈 것 처음이야."

 

Photo by camilo jimenez on Unsplash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니, 아내가 놀라 여기저기 살피고 어떻게 아픈지 묻습니다. 인터넷을 뒤진 건지 심장 쪽에 문제가 있으면 그럴 수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침대 위에서 떼굴떼굴 구르니 119에 전화를 했는지, 전화기를 바꿔줍니다. 아마 구급대원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구급차가 왔다며 걸어 나갈 수 있겠냐고 합니다. 구급차를 타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배를 움켜잡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한기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곧이어 경광등을 번쩍이는 구급차에 탑승했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가슴에 이것저것 붙이고, 구급대원이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추웠지만 땀이 났고, 마음은 놓였지만, 통증은 계속되었습니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여러 명이 제 주변에 몰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구급차에서는 가끔 눈이라도 떠보았지만, 응급실에선 통증에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바늘을 잘못 꽂았는지 미안하다며 사과한 남자의 음성과 응급실의 주취자가 욕설을 계속해서 조용히 하라며 대꾸했던 것 같습니다.  응급조치가 끝나고 엑스레이와 CT를 찍고, 진통제와 항생제 등을 맞으며 안정실 같은 곳에 밤새 누워 있었습니다.

 

Photo by Olga Kononenko on Unsplash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내내 끙끙거리고 아프다며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진통제를 더 줄 수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너른 창으로 여명이 보일 즈음 진통이 조금 덜해졌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올 때보다 덜해졌을 뿐이지 여전히 통증은 계속됐습니다. 응급실 의사가 오더니, 장염이라더군요. 위와 가까운 쪽의 장 쪽에 염증이 생겼고. 이른 시일 내에 소화기 내과 쪽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쿨하게 사라지더군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 8시쯤 되지 않았을까요? 집은 고요했습니다. 평소 일찍 일어나시는 부모님도 웬일인지 주무시는 것 같았고. 모처럼 거실에서 자던 아이들도 편안히 잠들어있었습니다. 45년 평생 처음으로 119를 부르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왔는데, 집은 너무나도 평온한 아침이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가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Photo by  Claudia Mañas  on  Unsplash

    

잠결에 거실에서 지난밤의 상황을 아내가 부모님께 얘기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통증은 계속되었고,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오후가 다 되어 일어났고, 주말 동안 통증을 참으며 월요일에 외래 진료를 받았습니다. 응급실 의사의 장염이란 말에 도대체 뭘 잘못 먹었던 건지 내내 생각했었는데…. 소화기 내과와 담췌장외과를 거쳐 담낭염이라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통증도 거의 없고, 약도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