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대중화, 그게 무슨 문제인데?
2020년 양주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시민참여단 모임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20여 권의 후보 리스트 중에 최종 결정인 시민투표를 위해 3권을 추리는 자리였는데요. 이때, <역사의 쓸모>(최태성, , 다산초당)에 관해 얘기해주셨던 분이 기억납니다. 역사를 전공한 분이셨는데, 연배로 모아 80년대 학번 정도로 보였습니다. 역사에서 인물과 사건의 극적인 부분만 강조해 재미를 주고 국뽕과 같은 억지 감동, 교훈을 강요하는 듯한 대중 강연자에 대한 비판이었는데요. 물론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주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환기해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반감이 앞선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역사학과 출신이지만,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최태성 작가가 <역사의 역사>에서 유시민이 거리의 이야기꾼으로 묘사한 헤로도토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아테네 시장 골목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라톤 전투를 전해주었습니다. 그것도 재미있게요.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를 문자로 옮긴 것이 <역사>인데요. 그래도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했기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와 달리 시가가 아닌 서사로 인정받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막연한 반감이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학계에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등 역사의 실체를 조명하는 역할을 하는 학자들이 있고, 그런 내용을 학교나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이가 있고, 방송이나 대중 강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끌게 하는 역사의 대중화에 역할을 하는 이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역사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에서 멘토 찾기
책은 제목 그대로 역사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그 속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139쪽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인생에서, 과거의 인물과 사건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단지 그 선택과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당사자가 되어보면 현실 세계에서 도움이 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도도 높일 수 있고요. 게다가 "언제 탈이 날지 모르는 멘토 대신 역사에서 롤모델을 찾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역사 속 인물은 티브이 출연도, SNS도 않으니 실수하고 실망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죠.
책을 통해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도전,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김육,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힘을 지녔던 장보고,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함을 보여준 박상진, 시대의 과제를 마주한 이회영 등 자신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멘토를 찾아보고 대화를 나눠보세요.
오늘과 이어지는 역사
<역사의 쓸모>를 통해 학교에서 재미없게 배운 역사를 흥미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과거의 단편적인 사실만이 아닌 오늘날과 이어지는 이야기와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금속활자로 글자를 찍어내는 기술은 분명 고려가 빨랐지만, 고려에서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자기들끼리만 보면 되니까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이와 다릅니다. 많이, 빨리 찍어내기 위해 만든 기술이에요." 108쪽
교과서에서는 직지심체요절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가르치면서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기술력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했고 그 영향력이 어땠는지에 대한 내용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쇄술에 관한 얘기는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과의 비교로도 이어집니다.
"저는 정보 공유의 역사에 두 번의 변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구텐베르크 인쇄기이고, 두 번째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입니다. (중략) 광고만 봐도 그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은 우리가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액정이 어떻고, 기능이 어떻다는 걸 설명합니다. 그런데 아이폰 광고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이폰의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지 보여줍니다. (중략) 이게 바로 철학 아닐까요? 마치 기술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좋게 변화시킬지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잖아요." 112쪽
우리가 흔히 쓰는 인정(人情)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으로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방납업자와 고을의 사또들이 주고받는 사례비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방납업자들의 10만 원짜리 귤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 방납업자들이 사또에게 사례비를 주는 거죠. 그 돈을 당시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인정'이라고 했어요. "너 왜 이렇게 인정이 없냐?" "사또, 이게 다 인정입니다." 이랬던 거예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뜻하는 말이지만, 저는 인정이라고 하면 부정부패가 떠오릅니다. 이 인정 때문에 백성들이 죽어났어요." 184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데 옆에서 화를 돋우면 '염장을 지른다.'라고 하잖아요. 이 표현의 유래도 흥미롭습니다.
"신라 조정에서는 염장이라는 자를 장보고에게 보내죠. 장보고는 염장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염장은 술에 취해 잠든 장보고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염장을 지른다는 표현이 이 사건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200쪽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최태성 작가가 전직 교사여서인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열심히 공부해 판사가 되었지만, 경술국치로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일제에 회유된 많은 조선의 엘리트와 달리 판사의 길을 포기한 독립운동가 박상진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줍니다.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그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207쪽
역사란 지루하고 재미없는 암기과목이라고 생각하는 분, 현실에서 제대로 된 멘토를 찾지 못한 분, 역사의 쓸모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한 분, 선택의 갈림길에서 답을 찾지 못해 고민인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찾아본 후, 솔직한 제 생각을 담은 리뷰를 작성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셨다면, '공감 ♡ 꾹~ +댓글+구독' 부탁드립니다.
- 리뷰 전파사, jocha 조차
'리뷰 전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N shift 2020 팬데믹 쇼크 2부 강연 요약 (2) | 2020.04.11 |
---|---|
tvN shift 2020 팬데믹 쇼크 1부 강연 요약 (2) | 2020.04.10 |
봄이 오는 속도 계산하는 방법 - 개화시기와 태양의 고도 (6) | 2020.03.25 |
독서 습관(메모)으로 확인하는 성격 - 김경일 교수@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 (4) | 2020.03.24 |
저스트 댄스와 PS4 카메라로 재미있게 운동하자! (7) | 2020.03.23 |